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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체 216건)
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6)
1670년 8월21일에 현종은 대신들을 인견하였다. 좌의정 허적이 아뢰었다."기근의 참혹함이 팔도가 똑같아 백성들의 일이 망극하고 국가의 존망이 결판났습니다. 상께서 만약 ‘백성이 모두 죽는다면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
김세곤  |  2020-04-2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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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5)
1670년(현종 11년) 8월 14일에 평안감사 민유중(閔維重)이 흉년으로 인해 타도 죄인의 정배(定配 유배지로 정하는 일)를 중지하도록 보고했다.“강변의 각 고을이 더욱 심하게 재난을 당하였는데 다른 도의 죄인들을...
김세곤  |  2020-04-1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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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4)
조정에서 굶어 죽는 이를 위한 구제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1670년 (현종 11년) 8월7일에는 전라도 익산·임실 등 고을에 굶주리는 백성(饑民)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로에 쓰러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이러자 8월8...
김세곤  |  2020-04-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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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3)
1670년 7월 22일에 사간원 사간 이규령 등이 아뢰었다."백성을 다스리는 임무는 수령에게 있고 한 도를 보살피는 책임은 감사에게 있는데, 이렇게 전례 없는 가뭄과 물난리를 당하여 구제할 방책을 생각지 않아서 참혹...
김세곤  |  2020-04-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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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2)
1670년 5월2일에 현종은 재해에 대해 근심하며 직언(直言)을 구했다.5월12일에 사헌부 장령 정중휘·경최, 지평 홍수하가 차자를 올렸다.“내수사(內需司)가 물품을 사사로이 저장하는 폐단과 사치를 숭상하는 폐습이 ...
김세곤  |  2020-04-0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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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1)
3월 11일에 WHO(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 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한 지 보름이 지났다. 세계는 여전히 공포 자체이다. 각국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지구촌의 삶이 멈췄다.조선 시대에도 염병(...
김세곤  |  2020-04-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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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寬容)과 대도(大道)의 선비, 면앙 송순
꽃이 진다하고 새들아 슬허마라.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삼 하리오.1545년 7월, 명종이 11세에...
김세곤  |  2020-03-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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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를 겸비한 호걸 중 호걸, 금호 임형수
엊그제 버힌 솔이 낙락장송(落落長松) 아니런가져근덧 두던들 동량재(棟樑材) 되리러니어즈버 명당이 기울면 어느 남기 버티리.대들보가 될 만한 소나무를 베어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이 시조는 하서 김인후(1510-1560)...
김세곤  |  2020-03-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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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 유희춘, 20년 유배 중에도 학문에 정진하다.
1545년에 인종이 승하하고 11살의 명종이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한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는 밀지를 내려 윤임, 유관 등 대윤 일파를 제거하라고 지시한다. 밀지를 받은 대신들은 모여서 상의하는데, 유희춘 · 백인걸 등...
김세곤  |  2020-02-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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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근절의 표상, 청백리 이후백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가장 공정하게 인사를 한 이조판서는 누구일까?선조 때 이조판서를 한 이후백(李後白:1520∼1578)이다.1578년 6월1일자 선조수정실록에는 이후백의 일화가 적혀 있다.이후백이 이조...
김세곤  |  2020-02-2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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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과 문장과 절의의 선비, 하서 김인후
“근래 소인(小人)으로서 죽어도 죄가 남을 자는 다 복직되고, 한때 잘못한 일은 있더라도 그 본심은 나라를 속이지 않은 자는 상은(上恩)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상은을 입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이 숭상하던 글...
김세곤  |  2020-02-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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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최익현 순국비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대마도 이즈하라 수선사(修善寺)에서 면암 최익현(1833~1906) 순국비를 보았다. 비 앞면에는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지비"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 비는 1986년 8...
김세곤  |  2019-11-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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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류성룡과 『징비록』(2)
파직 당한 류성룡은 1598년 11월20일에 서울 도성을 떠났다. 22일에 류성룡은 삼각산을 바라보면서 시 한 수를 지었다. 다시는 서울을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전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3천리인데벼슬살이의 ...
김세곤  |  2019-11-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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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류성룡과 『징비록』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청백리가 된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1601년 10월에 류성룡은 이원익과 함께 청백리로 뽑혔다. 영의정 이항복이 그를 추천하였는데 “이는 미오(郿塢)의 무고를 씻어 주기...
김세곤  |  2019-11-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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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牧民心書)의 탄생
강진군을 갔다. 사의재(四宜齋)와 다산초당을 찾았다. 1801년 11월 하순에 정약용(1762-1836)은 강진으로 유배 왔다. 그런데...
김세곤  |  2019-11-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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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혜장 선사의 만남 (2)
1811년에 혜장 선사가 입적하자 다산 정약용의 슬픔은 컸다. 그 슬픔은 1811년 겨울, 흑산도에 유배중인 둘째 형 정약전(1758&...
김세곤  |  2019-10-2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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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혜장 선사의 만남 (1)
강진군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을 걷는다. 이 길은 유학과 불교의 만남, 유배객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백련사 주지 혜장 선사(1772∼1811)가 걸었던 길이다.정약용과 혜장 선사...
김세곤  |  2019-10-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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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로 대법원장과 사법부 독립
서울특별시 서초동 대법원 법원전시관에서 김병로(1887∽1964) 초대 대법원장을 만났다. 그는 1948년 9월부터 1957년 12월까지 9년 3개월 동안 사법부 독립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한 쪽에 설치된 EBS ...
김세곤  |  2019-09-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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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다시 본다.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닮은 점은 두 전쟁 모두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싸웠고, 전쟁은 선전포고 없이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되었으며, 일본이 모두 승리한 점이...
김세곤  |  2019-09-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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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과 절의의 선비, 죽천 박광전 (5)
- 칠순의 의병장 박광전1592년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4월27일에 신립장군이 탄금대에서 패하자 선조는 4월29일 밤에 한...
김세곤  |  2019-09-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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