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문화」(2015년 봄, 통권 33호) pp.252-257에 게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패나 비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나라가 있을까? 베트남의 ‘호찌민 국립정치행정아카데미’에 가서 공직윤리와 반부패정책에 관한 강의를 하겠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다. 더구나 작년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해피아’에서 시작된 ‘관피아’ 논란이 공직 사정의 마지막 보루인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의 문서유출 파동으로 이어지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공직비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베트남에 오래 살고 있는 후배에게 카카오톡으로 연락했더니 베트남 방문을 환영하지만 ‘한국도 제대로 못하면서 뭐 하러 오느냐?’는 핀잔을 할 정도면 도대체 강의 내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12년 만에 다시 찾은 하노이

새해 첫 일요일 아침 5시 50분, 비행기 출발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지만 타고 가는 비행기가 ‘땅콩 회항’으로 시끄러운 대한항공인지라 12년 만에 다시 하노이를 가는 길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2002년 11월 하순 베트남 공산당 이념위원회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찾은 하노이는 새로 준공한 공항청사부터 시내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대형 교량에 이르기까지 뭔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겨 주었다. 12년 전에는 대우건설에서 지은 대하호텔이 고층건물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얼마 전 완공했다는 63층 높이의 롯데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니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애증의 역사가 있었지만 베트남 발전에서 한국의 역할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가지를 둘러보니 아직은 옛 건물들과 새 건물들이 혼재하고 있지만 가장 큰 변화는 과거 하노이 시내를 가득 메웠던 자전거 행렬이 이제는 오토바이 행렬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인 것 같았다.

1949년 설립된 「호찌민 국립정치행정아카데미(HCMA)」는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고위 공산당원과 중앙·지방의 고위공무원에 대한 교육, 그리고 사회과학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공산당 중앙위원과 중앙부처 차관급 이상, 지방 당서기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4개월 과정의 ‘핵심지도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공공분야 및 민간분야의 부패방지’에 관한 특강과 워크숍, 질의응답이 이번에 주어진 과제였다. 동행한 고려대학교 최흥석 교수와 함께 본원에서 80명을 대상으로 강의·워크숍에 이어 하노이에 위치한 제1분원에서 중견관리자 500명 대상의 특강과 질의응답, 그리고 다낭에 위치한 제3분원에서 교수·교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 질의응답을 통해 공직윤리와 반부패정책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직윤리나 부패방지에 대한 강의를 할 경우 곤혹스러운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인류역사를 통해 수많은 제도개선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연 부패 제로(0)인 사회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다. 어느 나라건 공직사회의 비리나 부패는 그 사회 전체의 비리·부패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부패척결 문제는 ‘나쁜 창과 착한 방패의 끊임없는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베트남 역시 통일을 이루고 나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해 왔지만 대내외 경제여건이 나빠짐에 따라 경제발전의 속도가 상당히 더디어져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돈’의 흐름이 많아질수록 부정부패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전자정부의 도입 등 정부운영의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도약이 어려울 거라는 느낌도 들었다.

호찌민 정신으로 돌아가라!

베트남을 이끌어 갈 고위직을 대상으로 무슨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 근대화 과정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발전이 크게 뒤졌던 아시아국가 중에서 일본, 한국, 중국이 먼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면 그 다음 차례는 베트남이 될 거라고 말문을 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머리가 좋다는 평을 듣는 베트남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을 이끌어가는 당 중앙위원과 고위직 후보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그 보다 더 적절한 칭찬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베트남 사람들의 몸속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과 같이 장유유서(長幼有序) 등 유교문화의 DNA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12년 전 공자를 모신 하노이의 문묘를 방문했던 생각이 떠올라 한국 사람들도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베트남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과 함께 새롭게 커나가는 부패문제를 해결한다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예로부터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권력, 돈, 명예를 동시에 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처신을 조심해야 하고, 공직부패의 제도적 예방을 위해서 부동산등기부 정비와 전산화, 금융실명제, 신용카드 의무화, 공직재산등록, 내부고발자 보호, 인사청문회 도입 등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 본 장단점 등을 설명해 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베트남 실정에 맞는 제도의 단계적(step by step) 도입과 실행이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위법사항에 대하여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라 ‘일벌백계’의 엄중한 처벌만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반부패정책과 공직윤리 확립에 대해 우리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이야기도 하였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배우기보다는 베트남 국민들이 ‘호 아저씨’로 추앙하는 ‘호찌민 정신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호찌민 주석처럼 독립투쟁 과정이나 집권 후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솔선수범하며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실천한 지도자가 세계 역사 상 또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을 생각할 때 부러운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호찌민의 애민정신과 청렴사상이 여러 사상적 흐름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곁에 두고 읽으면서 생각을 가다듬었다는 객관적 물증은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있지만 1940년대 남중국이나 소련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다산의 사상적 흐름을 접했을 거라는 추정은 가능할 것 같다. 12년 전 「하노이에 별이 뜨다」라는 책에서 호찌민에 대한 다산의 영향을 주장했던 중앙대학교 방현석 교수와 다시 통화한 결과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는 확인을 들었지만 한국과 베트남을 연결하는 사상적 교류에 대한 추정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마트시대와 베트남의 변화 전망

컴퓨터와 무선통신이 결합된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바야흐로 스마트시대가 열리고 있고, 페이스북, 카카오톡, 블로그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인터넷 공간을 통한 여론 형성이 기존 언론매체 보다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점에서 베트남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 2014년 11월 기준으로 9,340만 명의 베트남 인구 중 3,600만 명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1,9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베트남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눈높이와 참여 요구도 급격히 변화할 거라고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운영의 참여자도 점차 늘어나게 되고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의 점진적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국민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지 못하는 공직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할 때가 조만간 올 거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베트남 국민들의 정서에 스며있는 유교적 전통을 살펴보기 위해 12년 만에 하노이의 문묘를 다시 방문했지만 천정 보수공사를 하느라 과거 급제자들의 비석을 천막으로 가려 놓아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호찌민 묘지도 월요일 휴관으로 인해 직접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호찌민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호찌민 박물관’과 전체 인구의 86%를 차지하는 Viet족 외에 53개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소수민족 박물관’ 방문을 통해 다문화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베트남의 실체를 피상적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 귀국길에 들른 다낭(Da Nang)의 바나 마운틴, 靈應寺의 불상, 그리고 해변의 백사장은 굉장히 인상 깊었고 머지않아 휴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또 다른 베트남의 미래를 보여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옛 유적지인 호이안(Hoi An)의 건물과 거리 모습은 과거 중국과의 교류 흔적뿐만 아니라 마치 문화융합의 현장인 것 같아 몇 년 전 말레이시아 말래카를 방문했을 때 중국 ‘鄭和원정대’의 유산과 마주한듯한 인상을 받았다.

12년 만에 공직부패라는 무거운 주제를 갖고서 만난 베트남 고위직들과의 대화는 공직에서 물러난 지 7년 째 접어드는 나에게도 상당히 많은 여운을 남겨준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공직과 관련된 시끄러운 사건들을 되새겨 볼 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박수나 칭찬을 받은 적이 과연 몇 차례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공직자들은 결국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무한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공직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특강을 할 때마다 ‘돈을 많이 벌려고 공직에 들어왔다면 빨리 공직을 떠나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모름지기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公共마인드를 가지고 公益을 추구하면서 자기관리에 충실하며, 公正을 지향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트남과 한국의 차이가 과연 있을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공직자들이 나랏일을 하면서 과연 ‘정부가 할 일’인지 ‘정부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인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사회변화 트렌드를 주시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기자  honamf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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