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호남미래포럼 공동운영위원장ㆍ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

전남일보 기고

지난번 칼럼에서 광주ㆍ전남의 21세기 비전이 장보고 대사가 이루지 못한 청해진의 꿈을 되살려 완성하는 일이라고 주장한 필자의 소견에 몇몇 분들이 의견을 주셨다. 대체로 "좋은 얘기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는 질문이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21세기 청해진 구상의 초점은 셋이다. 그 첫째는 모든 것을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청해진은 완도에 거점을 두긴 했지만 지역이나 시설이 그 중심은 아니다. 새로운 비전을 보고 모여든 사람과 조직과 그들의 꿈, 그들이 수행한 역할에 중심이 있다. 1100여 년 전 청해진을 일으켰던 장보고와 그의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당시 시점에서 좋은 집안에 태어나 잘 배우고 잘 나가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정 반대로 신라 골품제 사회에서 성골, 진골은 물론 6두품, 7두품도 못 되었던 하층민가정 출신이 다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장보고 본인조차도 그 부조의 이름과 고향이 분명치 않은, 그러나 그랬기에 더 큰 야망을 가질 수 있었던 모험가였다. 고향 후배 정년과 함께 난세의 중국으로 건너가 무령군 소장으로 입신해 돌아올 때까지 그의 간난신고가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장보고와 청해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가치와 정서를 요즘 말로 압축한다면 애국심,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정신 아닐까 싶다. 광주ㆍ전남에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기업가 정신이라고 본다. 광주ㆍ전남의 다음 세대를 장보고와 그의 친구들처럼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젊은이로 길러내야 하고 전 세계에서 그런 젊은이들을 모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뜻을 펼 여건을 만들어 주고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데 지역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21세기 청해진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세계의 현안으로 대두된 교육혁신의 불길부터 광주ㆍ전남에서 피어올라야 할 것으로 본다. 산업사회의 표준화된 근로인력을 양성하는 공장 개념의 학교교육이 아닌 창의인재를 키우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광주ㆍ전남에서부터 채택되어 더 이상 의미 없는 경쟁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대전환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상대적으로 뒤진 입지가 이럴 때는 강점이 된다.

두 번째 초점은 처음부터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다. 영국을 선두로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화 물결은 미국, 일본, 한국을 거쳐 이제 중국, 동남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로 확산 중이다. 산업화의 효과로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은 인구가 밀집한 세계경제의 중심지역으로 떠올랐다. 한국, 특히 지리적 이점이 있는 호남 입장에서 엄청난 기회가 다가온 셈이다. 내수는 이제 기본이다.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정서적으로 통하는 가까운 이웃나라 시장부터 개척해 들어가는 현실성 있는 세계화 전략을 세우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화의 첫 과제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일이다. 필자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이 광주 전남을 '외국어 특구'로 상정해 초ㆍ중ㆍ고 과정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마스터하게 하자는 제안을 하고 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는 이유다. 광주ㆍ전남 출신은 대부분 영어와 중국어가 자유롭다면 취업 등에서의 소외, 차별도 정반대 상황으로 바뀔 것이 분명하다.

세번째 초점은 현실을 기초로 하는 단계적 접근이다. 장보고가 신라에 돌아와 맨 처음 한 일은 신라조정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신라인이 노예로 잡혀가는 일이 없도록 해상안보를 강화하자는 것이 명분이었다. 21세기 청해진으로 간다고 갑자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잘하는 것은 더 잘하고 안하던 것을 하나씩 새로 시작해나가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다.

광주ㆍ전남은 농수산 등 1차 산업에 오랜 전통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발전시켜 6차산업화하고 시장을 해외 부유층까지로 넓히는 방식을 통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한전 등 혁신도시 16개 기관을 동력원 삼아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일들은 결국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을, 특히 야망과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들여 줄기만 하던 광주ㆍ전남 인구를 다시 늘리는 자연스런 변화를 불러 올 것이다.

임란의병-동학농민군-5ㆍ18시민군을 넘어서 광주ㆍ전남 사람들이 '종합상사 청해진의 주주'로 다시 태어날 절호의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기자  honamf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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