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호남미래포럼 공동대표ㆍ전 보건복지부 장관

입력시간 : 2015. 08.21. 00:00

2000년대 초반 정무직(조달청장과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TV방송 3사에서는 장희빈과 한명회, 여인천하 등 조선조 권력 암투를 그린 역사사극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언젠가 필자는 전 직원 정례조회 때 "역사사극을 보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 모름지기 공직자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하는 데 사극에 나온 것처럼 권력을 잡기 위해 권모술수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암투, 음해를 보면서 공직자들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못된 짓을 모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걱정' 때문이었다. 이런 내용은 모 중앙 일간지 가십기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필자는 그 이후 2013년 12월 이용훈 전 대법원장 등 호남 원로들과 사회각계 지도층 인사들과 뜻을 함께 해 결성된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창립에 일조했다. 이 포럼의 운영 목표를 소외되고 낙후된 호남발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책 대안을 만들어 이를 공론화하고 중앙기관에 반영하는 것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동시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호남의 지역차별 극복과 균형적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주의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믿는다. 올해 초 모 중앙일간지와 서강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주의의 제 1원인으로 정치인과 정당의 지역감정 조장이 가장 많이 비중을 차지했다(조사 대상의 44.6%). 그 다음으로 특정 지역민에 대한 편견(23.6%)과 지역 간 경제 격차(14.0%), 특정지역 인사특례 및 차별(호남은 18.0%) 순이었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남은 지역주의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어 이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지역주의가 가장 강한 곳 역시 호남으로 나타났다.

최근 호남의 정치적 주류인 새정치연합이 무기력과 친노 대 비노, 호남중진 대 친노의 계파갈등 심화 등으로 신당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런데 신당을 주장하거나 분당을 은근히 부추기는 인사들이 유독 호남 정치인들이 많은 것도 지역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신당을 주장하는 호남 일부 정치인들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러나 일부 호남지도층 인사들이 신당설을 보는 눈은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획득하려 하거나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해보겠다는 의도로 자기 지분 확보를 위해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필자는 선출직 정치인 등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분당과 신당을 주장하는 일부 호남정치인들에게 3가지를 간곡히 제안한다.

첫째, 신당을 추진하여 수권 정당, 전국정당으로 거듭 태어나 개혁정치를 선도하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우선 자기 기득권부터 내려놓기 바란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처럼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부터 하던지 당선이 쉬운 호남을 벗어나 수도권에서 출마해 심판받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

둘째, 분당을 부추기고 신당을 추진하겠다는 호남 일부 정치인들은 각각 제 목소리를 내지 말고 함께 모여 통합된 단일신당을 만들어야 호남인이 조롱거리가 안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역시 호남은 "분열과 배신에 능하구나"하는 그릇된 사회 편견을 고착시켜 자라나는 호남의 미래세대에까지 인사차별을 받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말기 바란다.

셋째, 통합단일신당이 나오더라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공천탈락이 예상되는 기득 정치인들이 거기에 끼여 있거나 참신하고 열정 있는 새 인물이 주류가 안 된다면 설사 호남에서 몇 자리 의석을 얻기는 하겠지만 호남 고립과 지역주의를 자초하는 '호남 자민련'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이제 호남 대 비호남 구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버려야 할 때이다. 호남정서도 야권후보라면 무조건 지지하는 현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기회주의적인 인물보다는 호남발전에 헌신해 덕망과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인물들을 발굴해 삼고초려해서라도 영입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호남인들은 대의명분을 중시해 왔다. 흔히들 호남문화와 호남정신의 특징을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과 '의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이라고 일컫고 있다. 사실 저항과 한(恨)은 호남역사에서 보면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난 역사에서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과 '의(義)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이 호남인의 정체성을 지켜준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호남인의 이러한 정체성이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치인을 포함한 우리 호남 지도층인사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일이 대의명분에 부합되는지, 대의와 희생정신을 갖고 호남발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볼 때다.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기자  honamff@naver.com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