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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를 다시 본다(3)호남인물 순례 2

나주시 백호문학관에는 백호 임제의 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游錄)』, 『화사(花史)』, 『수성지(愁城誌)』 등이 전시되어 있다.

먼저 『원생몽유록』부터 살펴본다. 『원생몽유록』은 세조 때 사육신의 비극을 현실–꿈–현실의 형식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주인공 ‘원자허(元子虛)’가 꿈속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 비분한 마음으로 흥망의 도를 토론하였다는 내용으로, 세조의 왕위찬탈을 소재로 정치권력의 모순을 폭로하였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백호 임제와 관원(灌園) 박계현(1524~1580)의 만남과 관련이 있다. 1575년에 임제는 속리산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나주에 왜구의 침입 소식을 듣고 참전하고자 나주로 내려와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을 만났다.

한편, 박계현은 1576년에 판서가 되어 서울로 올라갔는데, 6월에 경연에서 “성삼문은 참으로 충신입니다.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을 보면 상세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선조에게 아뢰었다. 선조는 즉시 『육신전』을 읽어보고 크게 놀라 하교하기를, “엉터리 같은 말을 많이 써서 선조(先祖, 세조)를 모욕하였으니, 『육신전』을 모두 찾아내어 불태우겠다. 이 책에 대해 말하는 자의 죄도 다스리겠다.”고 하였다.(선조수정실록 1576년 6월1일)

이런 상황에서 임제는 1576년에 ‘몽유(夢遊)’ 수법의 소설을 통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고 정치권력의 모순을 폭로했다.

“원자허(생육신 원호를 말함)는 어느 가을밤에 꿈을 꾸었다. 항우가 의제를 죽인 장사(長沙)의 언덕에서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이 단종을 모시고 모여 앉아 강개시(慷慨詩)를 화답하는데, 복건자(남효온을 말함)와 원자허도 비통한 어조로 시를 읊었다. 이때 무인 유응부가 뛰어들어, 썩은 선비들과는 대사(大事)를 도모할 수 없다고 탄식하며 검무(劍舞)와 함께 비가(悲歌)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깼다.”

백호 임제는 금서(禁書)가 된 생육신(生六臣) 남효온(1454~1492)이 쓴 『육신전』 대신 『원생몽유록』 소설로 단종애사를 알림으로써 역사 기억 운동을 펼친 것이다.
 

원생몽유록


다음으로 『화사(花史)』를 살펴본다. 화사는 매화, 모란, 부용 나라의 흥망성쇠를 그린 풍자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역사 서술방식의 하나인 본기체에 의한 편년식으로 서술하고 사신(史臣)의 논평도 곁들였다. 『화사』는 1578년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당시에 동서붕당이 더욱 심해졌다.

화사


『수성지(愁城誌)』는 마음을 의인화한 우화소설이다. 허균은 『학산초담』에서 “이른바 『수성지(愁城志)』라는 것은 문자가 생긴 이래로 특별한 글이니, 천지간에 이런 문자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극찬했다.


천군(天君)이 다스리는 나라는 신하인 인(仁)·의(義)·예(禮)·지(智)·희(喜)·노(怒)·애(哀)·낙(樂)·시(視)·청(聽)·언(言)·동(動) 등이 제각기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하여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고(前古)의 충신·의사로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이 모여 ‘시름에 쌓인 성(愁城)’을 쌓게 된다.

이들은 충의문·장렬문·무고문(無辜門)·별리문(別離門) 등의 네 문을 설치하고 전횡을 일삼던 통치배 들에게 울분을 토했는데, 그 세력이 천군에까지 미치자 천군은 위기에 빠진다. 이러자 국양(麴襄: 술의 의인화)이 나서서 수성을 쳐서 천군은 화기가 돌고, 수기(愁氣)는 일소되었다.

『수성지』는 당시의 혼탁한 사회를 배경으로 풍자 수법으로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울분을 토로한 소설이다. 천군이 원혼들의 호소를 풀어주지 못하고 무능하게 세월만 보내는 장면은 바로 당대의 정치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이식(1584~1647)의 『택당집(澤堂集)』에는 『수성지』의 저작동기가 적혀 있다. 임제가 북평사(北評事)에서 서평사(西評事)로 옮겨갈 때에 어사의 앞길을 범한 이유로 탄핵을 받고 나서 지었단다. 따라서 『수성지』는 창작욕이 가장 왕성한 때인 그의 나이 32세(1580년)에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수성지


이렇게 임제는 『원생몽유록』을 환상적인 수법, 『화사』와 『수성지』를 의인화 수법으로 지어 조선 조정과 사회를 비판하였다. 우리가 시인으로 임제는 이제 사회비평가로서도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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