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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를 다시 본다(7)호남인물 순례 2

백호문학관에서 「망녀전사(亡女奠詞)」란 전시물을 보았다. 1586년 가을에 임제는 고향인 나주 회진에서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백호는 김극녕에게 시집 간 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이 21세였다. 임제는 병으로 빈소에 갈 수가 없어 영산강변에서 제를 지내면서 만사(輓詞)를 읊었다. 이를 읽어보자


큰 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亡女奠詞)

너의 용모 남달리 빼어나고
너의 덕성 하늘에서 타고 났지.
부모슬하에서 열다섯 해
시집가서 이제 여섯 해 되었지.

어버이 섬긴 일이야 내 아는 바이고,
시부모도 잘 모셔 칭찬을 들었다지.
하늘이여, 귀신이여.
내 딸이 무슨 허물 있나요?

한번 병들자 옥이 깨졌으니
이런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아비는 병들어 가보지도 못하고
울부짖고 통곡하니 기가 막히네.

너 이제 저승으로 가버렸으니
너를 만날 인연 영영 없겠구나.
네 어미는 지금 서울 가서
너희 외조모 앞에 있단다.

너의 죽음 알게 되면
약한 몸 보전하기 어려우리라.
부음을 듣고 나흘 지나서
금수(錦水)가에 망전(望奠)을 차리노라. 1)

술과 과일 조금 차려놓고
샘물을 떠다가 사발 가득 부었느니라.
어미는 멀리 있어도 네 아비 여기 있으니
혼이여! 이리로 오렴

샘물로 너의 신열을 씻어내고
술과 과일로 네 목이나 축이거라.
울음 그쳤다가 또 통곡하니
네 죽음 한스럽기 그지없어라.

가을 하늘이 구만리 아득해
이 한이 끝까지 이어지누나.

망녀전사(백호문학관)

 
그런데 백호는 큰 딸을 극진히도 사랑했었나 보다. 죽은 딸을 슬퍼하는 만시(輓詩)가 두 개나 더 있다.

죽은 딸의 만사 (亡女輓)

네 아비 지난 해 흥양(興陽)으로 부임하느라
서울의 가을바람에 황망히 떠나왔구나.
네 목소리 네 모습 눈앞에서 아리땁거늘
인간 세상 한 번 이별, 이제 아주 망망하다.

달 밝은 빈산엔 잔나비 울음 애달픈데
한 골짝 찬 서리 혜초 잎은 시들었네.
시집가던 그 날에 돌아보며 못내 그리더니
저승가면 어디메서 에미를 불러보랴.


백호는 1584년 겨울에 평안도 도사를 마치고 나서 병이 나서 평양에 머물렀다. 이후 그는 흥양(고흥의 옛 이름)현감으로 부임했다.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백호는 1585년 가을에 흥양현감으로 부임하면서 회진을 안 들렀던 것 같다. 2)

두 번째 만시이다.
 

망녀 만사 (亡女挽)

너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길에 한 잔 술 따라 주지 못하는 구나
몸져누운 사립문 앞을 푸른 이끼가 막았으니
가을바람(秋風)에 쫓아오는 기러기 떼 아무리 헤어봐도
혼령은 돌아오질 않으니 통곡한 들 어찌하랴!
 3)


이 시를 보면 백호는 나주 주회진에서 몸이 많이 아파서 돌아다닐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시에 ‘가을바람’ ‘기러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가을에 지어진 것이다.

한편 임제는 이 시기에 ‘병중에 마음을 달래다(病中自遺)’는 시를 지은 듯하다.

해묵은 고질병이 장부의 몸을 얽어매니
가을을 만나도 기력이 쾌하지 않는군.
서울이야 어찌 몸을 정양할 곳이리오.
산은 저 가야산(伽倻山), 물은 저 금호(錦湖)로세.  


금호와 가야산은 백호의 고향을 가리킨다. 회진 앞으로 흐르는 영산강의 별칭이 금호이고, 그 건너에 앙암(仰巖)이란 바위가 있는데 그 위의 산을 가야산 혹은 ‘개산’이라 했다. 이 시에도 가을이 나온다.

임제는 네 아들과 세 딸을 두었다. 큰 딸은 병조좌랑 김극령에게 시집가서 일찍 죽었다. 둘째 딸은 허교에게 시집갔는데, 남인의 영수 미수 허목(1595∼1682)을 낳았다. 허목이 임제의 외손자인 것이다. 셋째 딸은 후릉 참봉 양여백에게 시집갔다.

1) 금수(錦水)는 영산강의 별칭이다. 임제는 큰 딸의 부음을 듣고 4일 되던 날 영산강가에서 제를 지냈다.

2) 임제는 ‘흥양으로 가면서’라는 시도 남겼다.


변방 삼도(三道) 말안장에 허벅지 살 쪽 빠졌는데
이제 또 고을살이 남쪽 땅으로 가다니
허리에 부인(符印)을 찼으니 벼슬 영화 대단하고
행낭속의 손오병서(孫吳兵書) 특이한 은사(恩賜)로세.


차가운 비 뱃전에 뿌려 강물에 저는데
짝 잃은 기러기 달 보고 우니 해산(海山)은 가을이라
태평성세 대각에 영재들 많겠거니
관문 밖은 응당 정원후(동한의 명장 반초)를 기다리리.


3) 출처 : 신편 백호전집 (하), p 331-335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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