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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를 다시 본다(8)호남인물 순례 2

백호 임제는 1587년(선조 20년) 6월에 부친 임진(1526∼1587)의 상(喪)을 당하고, 2개월 뒤인 8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 39세였다.

죽음을 예감하여서였을까. 백호는 스스로 만시(輓詩)를 쓴다.


스스로를 애도함

강한(江漢)에서 보낸 40년 풍류생활
맑은 이름 세상 사람들을 울리고도 남으리라
이제는 학을 타고 속세 그물을 벗어나니
바다 위(海上) 반도 복숭아(蟠桃)는 새로 익었겠지
 1)


自挽

江漢風流四十春
淸明嬴得動時人
如今鶴駕超塵網
海上蟠桃子又新


백호는 자만(自挽) 시에서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미련 없이 속세를 벗어나 학을 타고 신선 세상으로 떠난다.’고 읊고 있다.

내친김에 백호문학관 근처에 있는 영모정(永慕亭)을 간다. 영모정은 ‘어버이를 길이 추모한다.’는 뜻의 정자로, 임제의 둘째 큰 아버지(仲父) 임복이 부친 임진, 작은 아버지 임몽과 함께 할아버지 임붕을 위해 1556년에 지었다.

영모정 아래에 물곡비(勿哭碑)가 있다. 백호 임제는 죽으면서 슬퍼하는 자식들에게 말하기를 "중국 사방의 오랑캐와 남쪽의 여덟 야만족들이 제각기 황제라고 일컫지 않는 자 없는데(四夷八蠻 皆呼稱帝), 유독 우리나라만이 중국을 주인이라 불렀으니(唯獨朝鮮入主中國), 이러한 나라에서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곡(哭)하지 말라(我生何爲 我死何爲 勿哭)"고 유언하였다 한다.
 

물곡비


이 얼마나 촌철살인(寸鐵殺人)이고 자주 독립사상가의 면모인가.

백호가 세상을 떠난 지 90여년이 지난 1678년에 홍만종(1642∼1725)은 『순오지』에서 임제의 「물곡사」를 소개하면서 “이 이야기는 비록 순간적인 비유로 웃어넘기는 일일 수 있으나,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이것을 되살펴 보면 여러 가지 폐백 물건을 바치느라고 짐승보다 못한 노릇을 하는 일이 해마다 계속되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면이 아닐 수 없다”고 적었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조공이 심해진 폐해를 지적하고 자주국가로서의 위상 정립이 절실함을 토로하고 있다. 2)

한편, 물곡비 왼편에는 ‘백호 임제 선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글은 노산 이은상이 지었다. 이를 읽어보자.

“조선 왕조 5백년에 가장 뛰어난 천재시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백호 임제 선생으로써 대답할 것이요. 그보다도 언제나 초탈한 천성을 지켜 파벌 당쟁의 탁류 속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자주독립사상을 견지하여 사대부유(事大腐儒)들과는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던 높은 인간성의 소유자를 찾는다면 그 또한 선생을 손꼽을 것이다.(중략) 향년 39세라. 일생은 이같이 짧았을 지라도 그 뜻과 문학은 천추에 전할 것이라. 여기 공의 이름 앞에 찬송을 바친다. 멋과 정한(情恨)의 시인 백호 선생이여, 깨끗한 그 모습 구름 가듯 물 흐르듯 하늘 복판에 달 가듯 하였도다. 자주 독립의 사상인 백호선생이여, 사나이 높은 절개 꺾을 수 없었기에 만인이 모두들 우러러 보았도다. 1979년 3월에 짓다.”
 

백호 임제 선생 기념비
백호 임제 선생 기념비 글 (백호문학관에 있다)


백호 임제를 다시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를 조선 최고의 풍류객으로만 평가했다. 사회비평가, 자주독립 사상가로서의 면모는 소홀히 한 점이 적지 않다. 이제 백호는 재평가되어야 하리라.


1) 반도(蟠桃)는 선계(仙界)에 있다는 복숭아이다. 창해 가운데 도삭지산(度朔之山)이 있는데, 그 위에 복숭아나무가 3천리에 서려 있다. 『산해경』에 나온다.
2)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에도 백호 임제가 언급되어 있다.


“임백호는 기상이 호방하여 검속당하기를 싫어했다. 병으로 죽음을 당해서 아들들이 슬피 부르짖자 그는 ‘사해의 여러 나라가 칭제(稱帝)를 하지 않은 자가 없거늘 유독 우리나라는 자고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이런 누방(陋邦)에서 살다가는 데 그 죽음을 어찌 슬퍼 할 것이 있겠느냐’ 라 말하고 곡을 하지 말라고 명했다. 또한 평소에 우스갯소리로 ‘만약 내가 오대(五代)나 육조(六朝)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돌려먹는 천자쯤은 한 번 해 보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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