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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로 대법원장과 사법부 독립

서울특별시 서초동 대법원 법원전시관에서 김병로(1887∽1964) 초대 대법원장을 만났다. 그는 1948년 9월부터 1957년 12월까지 9년 3개월 동안 사법부 독립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한 쪽에 설치된 EBS ‘지식채널 e’ <대법원장의 말> 비디오를 보았다. 김병로는 청렴의 표상이었고 정의를 바로 세웠다. 그런데 그는 이승만(1875∽1965)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세 가지 사건이 그렇다.

첫째는 반민족행위자의 처벌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 처벌에 소극적이었던 반면에 김병로 대법원장은 반민족행위자의 신속한 처벌을 주장하였다.

1948년 9월에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켰다. 곧 반민특위(反民特委)가 설치되었고, 김병로는 특별재판부 재판부장에 임명되었다.
친일파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박흥식, 이광수, 친일경찰 김태석 · 노덕술 등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반도의 공산화 저지가 국가적 급선무라고 생각하여, 검거된 경찰들이 반공주의자라는 이유에서 석방을 종용하였다.

1949년 6월6일에 친일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무장 해제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김병로는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반민특위를 습격한 경찰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을 속이고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사법기관에서는 추호도 용서 없이 법에 따라 판결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반민법의 공소시효를 1950년 6월20일까지에서 1949년 8월31일까지로 단축하는 개정안을 가결시켜, 반민특위 활동은 끝나고 말았다.

둘째는 사사오입 개헌이다. 1954년 11월에 자유당 정권은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제한을 철폐하는 ‘사사오입개헌’을 단행하였다.

11월27일에 헌법 개정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표결 결과는 재적 203명중 135명이 찬성하여 개헌 정족수인 136표에 1표가 미달하였다. 최순주 국회부의장은 개헌안이 부결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11월28일 일요일에 자유당 긴급의원총회가 열렸다. 자유당은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3...인데 사사오입의 수학적 원리에 의거 개헌 정족수는 135명이므로, 개헌안은 가결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1월29일에 최부의장은 27일의 개헌안 부결선포는 계산착오이므로 취소하고 가결을 선포하였다.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정국은 소용돌이쳤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사사오입 개헌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절차를 밟아 개정된 법률이라도 그 내용이 헌법정신에 위배되면 국민은 입법부의 반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셋째는 사법부 독립이다. 1952년 4월 서민호 국회의원은 국군의 거창 양민학살사건 조사에 불만을 품은 현역 육군대위로부터 총격을 받자, 자신의 권총으로 그를 쏘아 숨지게 하였다. 부산지방법원 양회경 판사는 서의원의 살인혐의를 정당방위로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현역장교를 권총으로 쏴 죽였는데 무죄라니 도대체 그런 재판이 어디 있느냐"라며 비판했다. 이에 김병로 대법원장은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죄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지 않는가."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1954년 11월 윤재욱 국회의원 횡령사건에 대하여도 1,2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이승만 정권은 불만을 표시했는데 이때도 김병로는 사법부 독립성을 강조했다.

한편 대통령은 1956년 2월 정기국회에 보낸 치사에서 “중대한 사건은 사법부는 행정부와 협의해서 판결을 내려야 한다.”면서 사법권 축소 의지를 보였다. 이에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행정부와 협의해서 법을 운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법부 독립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헌법의 가치를 지키려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게 "요즘 헌법 잘 계시는가? 대법원에 헌법 한 분 계시지 않느냐?"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법조계에서 유명하다.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톤은 평생 대통령을 할 수 있었지만 두 번 임기만을 고집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 받고 있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자유당 정권이 사사오입 개헌을 하지 않고, 3.15 부정선거로 4.19 의거가 안 일어났어도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추앙받았을 것이다.

한편 장성군 필암서원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1510∽1560)의 후손인 김병로는 사법부 독립을 지킨 초대 대법원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지금 사법부는 어떤가? 정의를 바로 세우고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가?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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