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역사
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35)

1671년 6월 4일, 대사헌 장선징 등의 상소는 계속된다.

“그런데 결코 지탱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신역(身役)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명목이 거의 수십 종을 넘고 각읍의 군보(軍保) 수가 또한 수십만 이상이니, 사람이 자식을 많이 낳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부역의 명목을 다 채우겠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해마다 세초(歲抄)할 때면 충원을 독려하는 각 아문의 관문이 바람과 벼락처럼 급하게 열읍으로 날아가 뒤섞이고, 수령된 자들은 오직 죄를 얻을까 두려워 민간을 끝까지 뒤지고 낭자하게 두들깁니다.

비록 강보에 싸인 벌거숭이라도 창을 지고 군포를 내야 하는 신역을 면치 못합니다. 그 어미는 관리 앞에서 가슴을 두들기며 피 울음을 울고 그 아기는 어미 품 안에서 빽빽 울어대니, 고금 천하에 어찌 이와 같은 정령(政令)이 있겠습니까.”


대사헌 장선징 등은 갓난아이에게도 군역을 부과하는 군정의 횡포를 여실히 아뢴다. 불현듯 1803년 가을에 정약용이 지은 시 ‘애절양(哀絶陽)’이 생각난다.

갈밭 마을 젊은 아낙네 곡소리 길기도 해
곡소리 동헌을 향해 하늘에 울부짖네.
싸우러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있었으나
옛날부터 남자의 양기를 잘랐다는 말은 못 들었네.

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조·부·자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네.
하소연하러 가니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관청에 지켜 섰고,
이정(里正)은 호통 치며 소마저 끌고 갔네.

칼 갈아 들어간 방에 흘린 피 자리에 흥건하고
남편은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후략)

상소는 이어진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병조에 자세히 하문하시어 여러 명목의 군보를 군사(軍士) 중 나이가 60세 이상인 자, 군역에 응한 지 45년이 된 자는 군역을 면제하도록 하소서.

이미 연한을 마친 자는 구애받지 말고 대신 군보를 정하며 모두 원안을 대조하여 줄여가게 하여, 오래 누적된 고질적인 폐단을 씻어내소서.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민정을 크게 위로할 것입니다.

근래 국가가 흉년을 진휼하는 것으로 인하여 각종 명목의 군포(軍布)를 미납한 것, 각사(各司)·내사(內司)의 신공(身貢)을 미납한 것, 관아 대출미를 미납한 것 중에 수를 감하여 받아야 할 것도 있고 햇수를 기다려 받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종류의 명목이 너무 많아 이루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올해의 흉년은 옛날에 없던 일이니, 지난해에 받지 못한 것을 올해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설령 농사가 조금 되는 해가 있다손 치더라도 종전에 쌓인 빚을 한꺼번에 겹치기로 받아낸다면 백성들의 힘이 고갈될 것입니다. 올해에 기근과 전염병으로 백성 태반이 사망하였으니, 빚을 진 백성들은 필시 대부분 귀신 명부에 올랐을 것입니다. 이왕에 그 당사자에게 책임지고 거두지 못한 것을 일가 이웃에게 전가하여 징수한다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백성들을 죽은 자와 함께 버리는 것이니 더욱 불가한 일입니다. 만약 거둘 수 없다면 차라리 흔쾌하게 면제하여 주어 인심을 수습함이 나을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경술년(1670년) 이전의 각 도의 각종 군보(軍保)와 노비 제반 신역(身役) 및 관아 대출미 미납 등의 항목을 임금께서 결단하시어 일체 면제하고 윤음을 내리시어 위로하고 구휼하는 덕을 선포하소서. 이 밖에 군덕(君德)에 관계되는 일과 정령(政令) 간에 말할 만한 단서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음을 신들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오직 성지를 세우시고 실덕을 닦으시며 크게 경계하고 크게 진작함이 오늘날 하늘에 응하는 가장 중요한 의리이며, 쓸데없는 병사를 제거하고 허비를 줄이며 인심을 수습하는 것이 눈앞의 어려운 시기를 구해내는 첫 번째 일임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우선 그 본원과 급무를 말하고 그 나머지는 뒤로 돌렸습니다.”


이러자 현종이 답하였다.

“국가가 불행하여 이런 망극한 재변을 당하여 백성이 장차 죄다 죽게 되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니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차라리 내 몸이 그 재앙을 대신 받고 말지언정, 백성이 그 화를 당하는 것을 차마 못 보겠다. 이제 상소 글의 사연을 보건대 모두가 격언이니, 마음에 간직하겠노라. 글 끝에 말한 일은 대신과 의논하여 조치하겠다.”
(현종개수실록 1671년 6월 4일 5번째 기사)

 

호남미래포럼  webmaster@honamff.or.kr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호남미래포럼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