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시간 : 2015. 01.16. 00:00

문병호 전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 호남미래포럼 선임운영위원

전남일보 게제글(2015.1.16)

  지난 연말 광주 한 방송국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토론의 주제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였다.

  모처럼 미래와 희망을 얘기하는 분위기가 종전과는 달라 보였다. 세월호로 시작해서 '땅콩회황'으로 끝난 셈인 2014년 연말특집 이었지만 주제가 건성의 덕담이나 상투적인 말놀음으로 들리지 않은 이유는 광주ㆍ전남에 닥친 변화가 조금씩은 실감되기 시작한 때문 같다.

  지난해 하반기 나주 금천의 광주-전남 '빛가람' 혁신도시에 공기업 이주가 시작된 뒤 광주-서울(용산) 간 KTX 열차는 주말 표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이전 대상 16곳 가운데 한전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공기업과 농촌경제연구소, 콘텐츠진흥원 등 13곳이 이전을 마쳤고 나머지 기관까지 옮겨오면 파급 효과가 다방면으로 누적, 심화될 것이다.

  3월엔 호남고속철도 오송-광주 구간이 개통돼 광주에서 서울까지가 1시간 40분 거리로 좁혀진다.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끝나면 연말엔 또 아시아 문화의 전당이 문을 연다.

  한꺼번에 이같이 변화의 계기가 주어지는 것은 광주ㆍ전남 행정구역이 생기고 처음일 것 같다.

  일제의 침략으로 강요된 근대화 이전 시기 서울을 기점으로 경기-충청-전라로 이어지는 서남부 평야지대는 국가의 정치 경제 산업 문화를 이끄는 중추지대였다. 1901년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하는 철도 부설이 시작돼 서울-부산 간이 1904년 말 완공되고 1908년 의주까지 개통되면서 이같은 경호 축(京湖 軸)의 중추부 역할 구조와 상황이 달라졌다.

  호남선 철도는 경부선보다 10년 늦은 1911년 착공해 1914년 개통했는데 기점이 서울이 아니라 경부선 때문에 생겨난 신생 도시 대전에서 갈라져 나오는 지선이었다. 중추부가 변방으로 전락한 상징적 변화다. 철도 효율을 극대화하는 복선화는 경부선이 1936년에 시작해 해방 직전인 1944년 끝났지만 호남선은 32년이나 늦은 1968년 착공해 36년만인 2003년에야 완공을 보았다. 경부선과 60년 시차다. 선거 때마다 쟁점이 되면서 "굼벵이가 기어가도 더 빨랐을 것"이라는 우스개가 '호남푸대접'의 대표 사례로 회자된 것을 다 안다.

  복선화에서 보듯 산업화가 본격화된 60년대 이후 국가 교통정책이 철도에서 고속도로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경호 축의 소외는 개선되기보다 가속된 측면이 오히려 많았다.

  호남 고속철도는 이 점에서 종전과는 달라진 상황을 보여준다.

  경부고속철도가 1999년 착공해 대구까지 2004년, 부산까지 2010년 완공된데 비해 호남 고속철은 2006년 착공, 올해 오송-송정 구간에 이어 목포까지 전구간이 2017년 완공된다. 경부보다 7년 늦는 셈이니 한 세기 전 1세대 철도의 60년 시차와는 확실히 다르다.

  KTX가 다니고 혁신도시가 가동된다고 해서 당장 경천동지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플러스 효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처지의 대구시 사례에서 보듯 마이너스 효과가 초기엔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광주가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변방의 낙후지대로 섬처럼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광주로 부터 전남 전역까지 사실상 서울로 편입되는 변화가 싫어도 시작된다.

  수도권과의 정보의 격차, 정서의 괴리가 빠르게 좁혀지면서 길게는 지난 한 세기, 짧게는 5ㆍ16이후 반세기 동안 호남인들을 분노하게 했던 많은 부조리한 상황이 해소되거나 완화될 것이다.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고 능동적인 역할이 선행해야 하지만 큰 흐름은 그렇다.

  수도권의 호남 연고 인사들이 모여 사회공헌 재능기부 활동의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 미래 포럼'을 결성하고 사이버 세상에서의 새로운 호남 이미지 구축, 인재 등용이나 취업에서의 지역 차별 해소, 방송 등 대중 오락물에서의 지역정보 왜곡 시정, 차세대 외국어 교육 혁신 지원과 창업 멘토링 등 다방면의 활동을 체계 있게 해보자고 뭉친 배경도 그것이다.

  오는 26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광주시, 전남도, 지역 언론사등과 함께 마련한 신년하례모임의 캐치프레이즈를 '호남,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다'로 잡은 이유 또한 그런 취지에서다.

  대중교통을 통해 전국이 2시간 거리로 좁아지는 대한민국은 서울을 핵으로 하는 세계의 '수도(首都)국가'가 불가피한 미래상이다. 글로벌시대 통일한국의 비전이고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광주의 입장에서 미래 발전 전략은 그래서 당연히 지난 세기 산업화 시대 그것의 추종이나 답습으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가능하지가 않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조차 과거가 된 변화의 흐름을 타 수도국가 안에서도 선두가 되고 중심에 설 준비를 이제부터라도 충실히, 또 신속하게 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기자  honamf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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