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호남미래포럼 공동대표ㆍ전 보건복지부 장관

입력시간 : 2015. 10.12. 00:00

지난 달 한가위 명절 성묘하러 광주에 갔다가 여러 친지들을 뵙게 됐다. '한가위 민심'이라 할 수 있는 그 분들의 화두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호남지역 경제가 어려워져 영세상인 등 서민생활이 점점 팍팍해 지고 있다는 어두운 목소리였다. 다른 하나는 호남정치권 주류인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염려와 여러 갈래의 야권 신당 대두에 대한 갑론을박이었다.

지금까지 신당 공식 창당을 언급한 광주ㆍ전남 정치인은 3명이다. 이들의 명분과 주장은 개혁정당, 수권정당, 전국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들의 논리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계파갈등과 무기력, 그리고 친노의 패권주의 탓에 내년 총선에서 참패하고 향후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니 야권 신당이 대두돼야 한다는 것이다. 충청권의 옛 자민련처럼 정치권에서 호남 목소리를 제대로 내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선거 때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호남신당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호남 민심을 보면 신당 명분에 동조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이분들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실정(失政)에 책임이 있고 자유로울 수 없어 '네 탓이오'만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분들도 있다. 이 분들이 호남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가와 전국적인 지명도와 야권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확고한 정체성과 비전을 갖춘 정치인인가에 대한 평가는 유보되고 있다. 호남신당이 야권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야권 분열에 앞장서는 결과가 돼 호남 고립을 자초하고 호남 대(對) 비호남의 지역주의 구도를 강화시킨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호남민심의 일부는 3갈래의 호남 신당설이 우여곡절 끝에 정리돼 단일 신당이 탄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개혁적이고 열정 있는 새 인물들이 주류가 안 되고 지명도가 높은 기성 정치인들의 기득권에서 밀려 나게 되면 호남인은 '분열과 배신'에 능하다는 그릇된 사회편견이 합리화되고 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염려도 적지 않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신당 창당이 기득권 유지와 공천권 담보 등 협상과 지분 확보용이 되지 않을 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개혁정당ㆍ전국정당으로 태어나겠다는 신당이 오히려 혁신과 민주화, 그리고 중진들의 적진(敵陳) 출마 등 기득권 타파를 위해 몸부림치는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과 달리 현실에 안주한다면 그 장래가 불을 보듯 뻔하다. 신당을 주도하는 인사들이 자신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호남에서 출마하겠다고 한다면 '혁신'과 맞지 않다는 말이다.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해 말 모 중앙일간지의 정치 여론 조사결과에 의하면 '여ㆍ야 정치권의 역할'에서 '잘못한다'가 89.7%로 나타났고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 재출마시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가 57.7%나 돼 정치권 불신이 매우 컸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송호근 서울대 교수까지도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주관 정책세미나에서 우리 정치 현실을 '실적 제로'의 '무정란(無精卵)정치'라고 진단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좌절감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주의라는 안전판'이 있기에 여ㆍ야 현역 정치인들은 공천만 되면 또 다시 당선된다는 냉소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사실 우리나라 지역주의의 가장 큰 요인은 정치인의 지역연고주의에 편승한 정치인과 정당의 지지 동원에 유권자의 정서적 일체감이 동조돼 있기에 정치권의 자성과 혁신, 그리고 정치제도 변화에 역점을 둔다면 지역주의 극복이 가능하다. 최근 들어서는 지역주의가 영남 대(對) 호남의 지역구도에서 더 나아가 호남 대 비호남의 구도로 점점 고착화되는 추세다. 이렇게 되면 인구수가 충청권보다 적은 호남권은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결국 균형적인 지역발전과 정부와 대기업의 인재등용 등 정치ㆍ사회 각 분야에서 호남의 소외와 차별은 한층 심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남정치인들이나 사회지도층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먼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다 주춤해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보완하기 위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폐율제 도입 등 선거제도나 권력구조 개편 등 정치적 제도 개선에 과감히 앞장서야 한다. 특정 정파나 좌와 우에 치우치지 않는 건전한 시민단체의 역할 강화도 매우 중요하다.

여러 갈래로 진행되는 호남발 신당 창당이 지역주의 극복의 독(毒)이 되느냐, 약(藥)이 되느냐는 오직 창당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에 달려 있다. 이들 정치인이 야권 통합신당을 만드는 밑거름 역할을 하는데 자기 임무를 다해 명실상부하게 전국적인 통합능력이 있는 대표성 있는 분을 추대하는 자기희생적 자세를 갖고 있는지 여부와 호남에서만 선거에 나서려는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는 용단이 있는지, 그리고 개혁적이고 열정적인 새 인물들의 정치권 진입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 지켜볼 따름이다.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기자  honamf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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